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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5 벙커 트릴로지 아가멤논(자첫) : 박민성, 신성민, 김바다, 이진희

김나잇 2019. 6. 10. 16:44

190115 벙커 트릴로지 아가멤논

※스포주의※

 

[최근 본 작품 중에 가장 만족스러움]

자첫이고 아무 정보 없이 보러 갔는데 일단 입구부터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놀이공원 입장하는 느낌이었다. 무대도 그렇고 입구도 정말 다른 시간으로 인도하는 느낌.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놀랐던 것은 아주 작은 공간과 아주 불편한 좌석이었다. 나는 B구역 B열 가운데쯤 앉았는데 좀만 더 쉬다가 들어갔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밖에 겉옷 보관하는 행거가 있는데 귀찮기도 하고 그냥 착착 접어서 무릎에 올려놔야지 생각하다가 불편한 것 같아서 행거에 걸어두고 들어갔다. 근데 정말 그때 롱패딩을 입고 들어갔다면 100% 후회였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이용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좁디좁은 공간은 정말 충격적이다. 게다가 B열은 앞뒤로도 좁아서 자리가 중간이라면 일찍 들어가지 않는 자 죽음뿐…. 차라리 C열로 갈 걸 하고 후회를 했다(근데 표도 없는걸). 덩치가 큰 남자 관객은 정말 어깨를 접어서 보는 데 너무 불편할 것 같았다. 배우들이 무대 양쪽에서 연기를 펼칠 때면 누굴 봐야 할지 동공 지진이 일어나고 멀리서 무대 전체를 볼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아니라서. 게다가 관객들 머리에 가려지기도 해서 당황스럽다. 테니스 경기를 보는 것처럼 배우들의 티키타카에 맞춰서 고개를 획획 돌리면 그것 나름대로 관크가 될 것 같은데, 눈알만 굴리는 것도 힘들어서 포기하고 오디오만 들은 경우도 있었다. 공연장 잘 꾸몄는데 그래도 여러모로 불편한 지점이 많았다. 아무리 벙커 안의 느낌을 주고 싶다고는 하지만…

여성 참정권을 위해 활동하는 크리스틴이, 그렇게 강해 보였던 크리스틴이 전쟁으로 인해서 점점 약해지는 게 보일 때 너무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알베르트도 마찬가지로 여유로운 능구렁이처럼 보이는 사람이 점점 망가져 갈 때 전쟁의 참상을 확 느꼈다. 알베르트가 크리스틴한테 플러팅하는 부분은 역시 민성배우가 해서 그런지.. 역시..

진희 배우가 장총을 들고 쏘는 장면에서 피아노 소리가 나면서 알베르트가 반한 연출을 보여주는데 정말 나도 그때 반해버렸다. 너무 멋있다. 개인적으로 진희 배우는 뭔가 큰엄마 상이다. 누굴보고 고양이상, 아이돌상 이런 식의 표현을 붙이듯이 진희배우는 큰엄마상..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근데 볼 때마다 큰엄마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그런 익숙하고 독특한 느낌. 

"여성에게 참정권을!"

크리스틴이 경마장 이야기를 하는 장면 역시 잊히지 않는다. 나는 유난히 이런 부분을 좋아한다. 무대 위의 캐릭터가 회상하면서 설명하는 장면. 무대로 그 회상씬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오로지 그 캐릭터를 맡은 배우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무대에서 입을 통해서만 알려주는 장면을 좋아한다. 관객석에 앉아 캐릭터가 얘기하는 데로 내 머릿속에서 상상하는데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앞에 쫙 펼쳐지는 기분이다. 예전에 연극 레드에서 켄이 과거를 설명하는 장면도 비슷했는데 그때도 배우가 너무 잘해서 좋았다. 이번에 벙커에서는 진희배우가 이걸 너무 잘 살려줬다. 그리고 "여성에게 참정권을!" 이라는 대사를 외치며 공연장이 꽉 채워졌을 때 정말 소름이 돋으면서 감동 받았다. 역시 잘한다. 

크리스틴이 "그러자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나는 왜 투표를 할 수 없는지. 나는 왜 내 이름으로 어떤 재산도 가질 수 없는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지. 나는 왜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되는지." 이 대사가 현재 대한민국의 여성들을 잘 나타내지 않나 싶다. 페미니즘을 안 후로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고, 현실을 살면서 눈치채지 못했거나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말하지 못했던 불공평함을 제기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정신을 차리는 여성들과도 이어진다. 그리고 크리스틴이 살던 시대에서 지금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많은 장벽과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도 너무 슬픈 지점이다. 

 

[나름대로 해석]

개인적으로 베개 의미를 고민해봤다. 처음엔 사랑의 의미로 느꼈는데, 괴한을 죽이는 용도로 쓰여서 사랑을 뜻하는 베개를 저렇게 활용하면서 의미를 퇴색시키는구나 하고 이해했다. 마지막에 다시 알베르트가 베고 눕게 하는 장면은 크리스틴의 남편을 향한 마지막 배려일까. 

베개는 알베르트를 위한 선물(사랑), 괴한을 죽이는 데에 쓰는 물건(죽음)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면서 원래 사랑을 담고 있던 것이 죽음이란 의미로 덮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크리스틴은 알베르트가 돌아와서 자기가 만든 베개를 베고 옆에서 자는 걸 꿈꿨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 결론은 크리스틴이 알베르트를 죽이고 바닥에 누워 죽은 알베르트에게 마지막으로 베개를 베어준다. 이로써 사랑 → 죽음 → 사랑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의 의미가 동시에 새겨지는 것 같다. 마지막 기회를 주면서까지 사랑했다는 것과 그 사람의 죽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 

결국 마지막은 크리스틴이 선택한 삶이다. 크리스틴이 스스로 선택한 인생이다. 크리스틴이 아니라 클리템네스트라가 된 것도 자신의 선택이다. 극 중간마다 크리스틴이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라는 식의 말이 나온다. 요한이 얘기하기도 하고, 알베르트가 얘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아가멤논 에피소드가 말하는 것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꺼져라 꺼져라 찰나의 촛불이여. 인생은 그저 걸어다니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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