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잇의 연극, 뮤지컬 관극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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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극일지/-연극

190108 레드(자첫) : 정보석, 김도빈

김나잇 2019. 5. 26. 01:53

190108 레드

로비에 작품 속 인물에 대한 설명이 잘 적혀있어서 모르는 채로 가도 좋다

 

※스포주의※

 

[다음번엔 무조건 1층으로..]

우선 자리가 3층 오른쪽 사이드라서 되게 걱정했다. 혹시 몰라서 오츠카도 들고 갔는데 필요는 없었다. 사이드인데 무대랑은 가까운 곳이라 3층치고는 거리가 멀진 않았다. 사실 거리가 멀어서 안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안 보인다.. 배우가 오른쪽으로 갈 때마다 진짜 하나도 안 보인다. 켄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은 하나도 안 보여서 오디오만 들었다. 그런데 이런 자리를 40,000원을 주고 가다니. 아무리 A석이라 해도 너무해..

오른쪽을 보고 싶으면 무조건 수그리를 해야 하는데 옆에 앉은 관객들한테 방해가 될까 봐 슬쩍 쳐다봤는데 다들 똑같이 수그리 중이라ㅋㅋㅋ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나도 안 보일 때는 수그리하다 말다가 했다. 심지어 의자도 무슨 학원 상담실에 있을 법한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였다. 아직도 충격적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꽤 많이 왔었다. 정보석 배우의 인지도 때문이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족]

대사가 진짜 빡빡하고 핑퐁 오지고 너무 좋아서 보는 내내 희열이었다. 나는 뮤지컬의 경우 큰 노랫소리가 사람을 압도하는 걸 좋아하는데 레드는 연극이다 보니까 노래보다는 대사와 감정, 두 배우의 말싸움에 진짜 압도돼서 너무 소름 돋았다. 확고한 신념이 있는 선생 로스코와 조금 더 부드럽고 혈기왕성한 켄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다투고 하는 장면 모든 게 다 너무 좋았다.

 

정보석 배우는 그동안 티비로만 보다가 처음으로 연극으로 봤는데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 또 너무 달라서 좋았다. 내 기억 속 보석 배우는 지붕뚫고 하이킥이 가장 큰데 그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졌다. 역시 배우는 다르다. 그리고 김도빈 배우 또한 굉장히 만족했다. 마음이 열려있는 젊은 예술가 같은 느낌이 멋진 배우였다. 둘의 연기는 정말 흠잡을 곳 없이 감상하기에 충분했다.

 

큰 캔버스에 밑 색을 칠하는 장면에서 배경으로 잔잔히 깔리던 음악소리가 커지면서 두 사람이 빨간색을 마구마구 칠하는데 진짜 소리 지를 뻔했다. 짜릿한 희열이다. 옷과 팔에 빨간 물감이 튀는 것도 무시하고 아주 빠르면서도 또 공을 들여서 캔버스에 레드를 칠하는 그 순간이 너무 소름 돋았다.

 

그리고 로스코가 조명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약간 어두운 공연장의 조명을 갑자기 형광등의 푸른 흰색으로 확 밝히니까 무대 가운데에 있던 붉은 그림이 순식간에 죽어 보이는 게 정말 충격적이었다. 조명 물론 중요하다고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극명하게 작품의 느낌이 살고 죽는 것을 보여주니 로스코의 말을 안 믿을 수가 없다. 평소에 로스코 스타일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도, 뭘 느끼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림이 조명 하나에 살아있고 죽어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니까 내가 그동안 작품 감상을 잘못 해왔나 싶을 정도였다. 

 

켄이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데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그 정도로 그때 배우님의 연기가 좋았고 빨려 들어갔다. 유리창에 쌓인 눈, 피, 여동생. 켄이 입을 여는 순간 정말 그 장면이 앞에 펼쳐졌고 배우의 목소리를 내레이션 삼아서 영화의 한 장면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로스코가 우린 부모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진짜 친부모를 뜻하는 게 아니라 예술계에서 살면서 뭘 어떻게 하면 된다라고 알려줄 만한 부모 같은 존재가 없다는 뜻이었겠지? 이 대사를 듣고 나서 마지막에 로스코가 켄한테 “네 인생은 저 밖에 있으니까!”라는 말을 할 때 순간 아.. 하고 소리 낼 뻔했다(속으론 이미 야광봉 흔들었음 붕붕) 

켄은 부모 없이 자라서 이곳저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살다가 로스코의 조수로 들어가서 2년간 일하는데 그에게서 영향받은 것도 많을 테고 아버지 같은 느낌도 받았을 것 같다. 로스코는 마지막 즈음에 켄의 내면을 알아봤다고 해야 할까? 켄이 가지고 있는 잠재성 같은 것을 깨닫고 얘는 이곳에 뿌리내리게 하면 안 된다고 깨닫고 밖으로 나가라고 한 것 같다. 그리고 처음에는 고작 조수라고 생각했다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도 바뀌는 것을 보고 정말 켄이 남다른 사람이라고 느끼고 정말 그를 위한 선택을 해준 것 같다. 로스코가 정말 본인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켄이 영향을 미쳤으니까.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으면서도 굉장히 다른 켄이 그 화실에만 머물면 안 되고 그와 어울릴 동료들을 찾아 떠나라는 말이 정말 아버지가 해주는 말 같았다. 켄에게는 없는 친아버지 같기도 했고 또 로스코에게는 없었던 예술계의 아버지 같기도 했고. 자기에게는 없었던 존재이지만 결국 자기 자신이 남에게 그런 존재가 된 로스코.

 

후반부에 로스코가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면서 “궁금해. 얘들이 날 용서해줄까?”라고 말하는데 이 대사도 너무 좋았다.  질문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같았다로스코의 의도는 포시즌스 레스토랑이 싫어서 입맛이 뚝 떨어지는 그림을 걸려고 만든 건데 과연 그런 의도로 걸린 그림들은 좋은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게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대하는 좋은 태도일까? 그동안 예배당 같은 곳을 찬양하고 그런 곳이야말로 진정 그림이 걸리고 사람들이 그림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던 로스코인데, 아무리 로스코의 의도가 따로 있다고 해도 상업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그 레스토랑에서 돈을 받고 그림을 거는 건데 그런 위선자 같은 행동을 로스코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지, 용서할 수 있을지.

 

말하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표현력이 부족해서 탈이다. 책 더 많이 읽어야지..

 

 

역시 신시는 이런 극이랑 잘 어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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