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19 지킬앤하이드(자첫) : 박은태, 해나, 이정화
181219 지킬앤하이드
※스포주의※
[역시 유명한 건 다 이유가 있다]
지킬앤하이드 역시 재밌긴 재밌다. 파사드에서 전 출연자가 나와서 삿대질을 하는 장면이나 하이드의 등장이나 모든 부분이 흥미롭다. 파사드나 머더머더에서 앙상블들이 등장해서 무대를 꽉 채우고 쫀쫀하게 노래를 부르는 것도 재밌다. 지앤하의 넘버는 워낙 유명하고 좋다보니까 귀도 즐거우면서 무대디자인이 굉장히 좋아서 눈도 즐겁다. 다이아몬드형의 무대로 그렇게 깊게 쓰진 않는다. 그래도 자리가 조금 뒤라면 오페라 글라스를 쓰는 것을 추천한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게 매우 즐겁기 때문에 샤롯데씨어터 1층 MD부스 옆에 오페라글라스 대여하는 곳이 있다. 그렇게 좋은 망원경은 아닌 것 같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 내가 이번에 앉았던 5열은 없어도 괜찮게 잘 관람했다.
아무래도 극 중 가장 멋있는 무대디자인이라고 하면 지킬 박사가 지금 이 순간을 부르면서 선악 분리 실험을 진행하려는 그 다짐을 하는 순간이지 않나 싶다. 정말 유명한 곡인 지금 이 순간은 지킬 박사가 자신의 방에 앉아서 시작하는데 이때 무대에 올라와있는 책상이나 아버지의 거대한 초상화 같은 것들이 다 사라지면서 무대 맨 뒤에서 긴 실험실 테이블이 흰 조명과 함께 등장한다. 그리고 무대의 양쪽에서 5m 높이를 꽉 채우는 1,800여 개의 메스실린더가 담긴 세트가 멋지게 등장한다. 2층 중앙에 앉으면 그 흰 조명이 눈을 강타한다(가만히 있다가 당한 사람).
컴퍼니가 박은태 배우 하이라이트는 안 내줘서 전동석 배우로 대신한다
하이라이트에서 짧지만 무대의 압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지앤하 말고도 오필영 무디의 다른 무대를 보면 역시 잘하는구나 싶다. 주조연과 앙상블, 무대, 넘버 모두 좋다. 심지어 샤롯데 로비조차 좋다. 대기업 꺼라 그런가(와이파이도 잘 통함).
샤롯데 로비 바닥이 빨간 카펫인데 지킬앤하이드 포스터와 캐슷보드가 빨간색이라 서로 잘 어울린다. 극장 내 좌석도 괜찮은 것 같다. 지킬앤하이드가 인터미션 포함 거의 3시간인데 3시간 동안 앉아서 봐도 특별히 불편한 건 없었던 것 같다. 다른 공연장은 2시간 앉아있어도 엉덩이가 진짜 박살날 것 같은 경험 많이 했다.
[이런 내용이 2018년에. 그것도 8세 이상 관람가]
술집 댄서들의 공연, 미성년자 여성(딸 같은 줄리엣이라는 표현이 나온다)에 대한 성매매, Dangerous Game에서 보여주는 루시와 하이드의 모습, 폭행 및 살인 등 초등학생이 보기에 적합하지 않은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 공연장에 가면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이 많은데 아이들이 보기에 전혀 좋은 작품이 아니다. 컴퍼니는 대체 왜 이 작품을 8세 이상 관람가로 정했는지 의문인데, 좀 더 많이 팔리기 위한 방법이었나 싶기도 하다.
술집 여성으로 등장하는 루시는 극 내에 등장하는 스파이더라는 남자에게 뺨을 맞고 멱살을 잡히고 밤에 너의 방으로 찾아간다 하는 소리를 듣는다. 또한 하이드에게 폭력을 당해 어깨 쪽에 상처가 남고 억지로 관계를 맺는 등 고전적인 창녀 캐릭터이다. 여성을 향한 폭력과 혐오가 심화되고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현재 이런 극은 굉장히 시대의 흐름과 반대이지 않나.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어린아이들이 이런 장면을 거름망없이 본다면 결국 배우는 게 무엇이려나.
지킬의 친구 어터슨이라는 작자가 하는 말은 더 가관이다. "자넨 좀 쉬어야 해. 여기(술집)가 연구실이야 인간 연구실."
지킬의 약혼자 엠마와의 약혼식이 끝나고 어터슨은 지킬을 데리고 루시가 있는 술집으로 데려간다. 쉬어야 하는 사람을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술집에 데려간다? 그것도 약혼식이 방금 끝난 사람을? 사실 약혼식이 있든 없든 가면 안 되는 거지만 무대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달콤한 노래를 하던 사람이 오분 뒤에는 술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는 모습은 정말 한숨이 나온다. 사실 어찌 보면 현실 고증인가 싶기도 하다(이마짚).
지킬의 약혼자로 나오는 엠마 커루 또한 고전적인 성녀이다. 귀족 집안 출신의 정말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이는 이 여주인공은 그 당시에는 미친 사람으로 불리는 지킬을 지지하는 여성이다. 문제 많은 지킬이지만 응원해주고 감싸주는 그런 딱 '안사람' 같은 이미지이다. 작품에서는 지킬이 결혼식 때 죽지만 만약 지킬이 그렇게 죽지 않고 엠마와 결혼을 하고 살았다면 엠마는 남편을 지지하고 기를 살려주는 그런 캐릭터를 넘어서 모성애까지 보여주는 정말 클리셰 가득한 길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여성 캐릭터를 그것도 2018년에 이렇게까지 단순하고 발전 없이 만드는 것도 문제지만 캐릭터 개인의 고유한 서사 없이 오직 지킬의 비극성을 심화시키기 위해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도 문제다.
[결국 배우들이 이끌어가는 작품]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은태 배우의 이미지는 지킬박사에 가까워서 하이드가 되면 어떨까 궁금했다. 더마스터에서 Alive 장면을 봤지만 그래도 내 머릿속에는 지킬박사와 더 어울리는 배우였다. 실제로도 젠틀하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얘기가 많아서 귀족 신사가 생각나는 배우이다.
은태 배우를 보면서 가장 놀랐던 장면은 역시 얼랍에서 맨 마지막에 에드워드 하이드!!!!하는 부분을 한 음 더 올려서 높게 불렀을 때이다. 원래 하이드를 표현할 때 지킬보다 목소리도 낮고 거칠게 표현하는데 그러다가 맨마지막에 공연장 천장을 뚫어버릴 듯 시원하게 올려 부르는데 정말 소름이 돋았다. 이사회 장면에서는 지킬이 화난 모습이 그 안에 있는 하이드(악)를 감추고 억누르고 최대한 신사처럼 얘기하지만 언뜻 비치는 하이드의 모습인 것 같아서 좋았다. 분리 전이라 두 모습이 같이 보였고 분리 후엔 지킬은 선을 하이드는 악을 상징하며 아예 나위어지는 게 드러나서 더 좋은 것 같다.
마약씬은 너무 웃기고 귀엽다. 오늘 관객이 더 잘 웃어주니까 더 신나서 덩실덩실 흔드는 것도 귀엽다ㅋㅋ
댄져는 확실히 배우가 좀 조심하는 느낌이다. 아무리 그러라고 만든 장면이지만 배우 본체가 몸 더듬는 것을 덜 하는 느낌이다. 직접적인 터치도 적었고 그냥 몸의 굴곡을 따라 만지는 척하는. 에어댄져. 그렇다고 보는데 신경이 거슬리는 것도 아니고 괜찮았다.
은태 배우 결혼식 장면에서 계단 내려오다가 다칠 뻔했다. 컨프롱때 힘을 너무 써서 다리가 풀린 건가? 암튼 되게 식겁함. 금방 자세 잡고 하긴 했지만 가까이서 보는데 계단에서 살짝 미끄러진 것처럼 보여서 깜짝 놀랐다. 조심하시길ㅠㅠ
커튼콜에서 옷 뽝 찢고 팔 휘두르는데 갑자기 긍저스가 오버랩되네ㅋㅋㅋ 하이드 특기란에 옷 찢기 넣어도 될 것 같다.
오늘 1막에서부터 조명이 이상했다. 갑자기 빨간 불빛 번쩍 한다던가. 2막에서는 어터슨 루시에게 편지를 읽어주는데 갑자기 조명이 꺼졌다. 그 뒤에 수습하는 건지 뭔지 드르르륵하는 소리 나서 좀 거슬렸다. 조명도 조명인데 기침 관크도 유독 심했다. 조용할만하면 뒤쪽에서 콜록콜록;;
천둥씬에서 우르릉쾅쾅!!!!!!!!!!!!!!!(하이드뿅) 하는데 진짜 놀라서 튀어오를뻔했다. 관객들 다 엄청 놀랐는지 분위기가 술렁하더니 군데군데에서 헛웃음소리 나고..
해나 루시 오늘 목이 안 좋았던 건지 약간 불안 불안했다. 1막에서는 괜찮았는데 2막에서는 좀 흔들렸던 것 같다. 확실히 배우가 어려서 그런지 좀 더 귀엽고 오밀조밀한 느낌이 난다. 해나 루시를 보면 정말 어릴 때부터 레드렛에서 잔심부름으로 돈을 벌다가 결국 술집 직원으로 일을 하는 루시로 상상된다. 어릴 때부터 돈을 벌기 위해서 레드렛에서 청소하며 살다가 나이가 들자 술집 손님들 눈에 띄어 억지로 그런 일까지 하게 되는. 그런 루시가 드디어 자기 인생을 찾겠다고 뉴랖을 부르며 다짐하고 떠나려고 하는데 하이드가 다 망쳐버렸어. 분명 하이드가 위선자 다 때려죽일 땐 그래 더 해라 더 해!! 하면서 내적 열광했는데 루시 죽이자마자 마음이 식었다..
정화 배우는 정말 귀족 아가씨 같다. 엠마가 귀족 아가씨이긴 하지만 배우 본체도 우아한 느낌이다. 내가 생각하는 엠마의 모습에 가장 잘 어울린다. 히즈웍에서 정화 엠마가 성악 발성으로 치고 나오는 부분도 또한 너무 좋다. 사실 그때 4명의 배우가 너무 자기 얘기만 해서 잘 알아듣지는 못하겠는데 정말 좋아하는 곡이다. 남배들이 뒤에서 기도하네~하면서 부르는 동안 엠마가 성악 발성으로 가운데에서 탄탄하게 잡아주는데 정말 멋지다. 엠마랑 지킬이 약혼식에서 꽁냥꽁냥 하는 거 미소 짓고 보게 되는데 다른 관객들도 똑같은 마음인 건지 약간 분위기가 ㅎㅎㅎ귀엽네 하는 느낌.
마지막 결혼식 장면은 조명이 정말 밝고 지킬과 엠마가 맨 앞으로 나와있어서 정말 잘 보인다. 근데 그 장면 은태배우 자꾸 팬텀이랑 겹쳐 보여서 내적관크. 아니 팬텀 못사인데도 왜 자꾸 팬텀이 떠오르는지.